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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 게 어려워도 축구는 본다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축구, 이란식 스타일>

  • 기사입력 2015-04-0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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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축구의 상징 자바드 네쿠남(35).

테헤란 더비

여성 문제를 포함해 이란 사회 전체가 축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펴보는 다큐멘터리 영화 <축구, 이란식 스타일(Football, Iranian Style)>은 테헤란 더비로 시작됩니다. 테헤란은 이란의 수도죠. 즉 이란 수도를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라이벌전입니다. 그 주인공은 페르세폴리스 FC와 에스테그랄 입니다.

붉은색 유니폼의 페르세폴리스는 주로 서민층에게 인기가 많은 구단입니다. 반면, 푸른색의 에스테그랄은 중상류층이 좋아하는 팀이죠. AC 밀란과 인테르 밀란도 팬들의 사회 계층이 다르다고 하는데 이란 수도 연고의 팀도 마찬가지네요.

이 두 팀의 경기는 FIFA에서도 인정하는 세계적인 더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 속에 나오는 테헤란 더비는 정말 살벌함 그 자체입니다. 10만 명을 수용하는 아자디 스타디움은 전석 매진됩니다. 그리고 관중들은 폭죽을 터뜨리고, 그라운드 곁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경찰 병력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뜨거운 더비의 현장에서 여성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이란 여성은 축구장에 들어갈 수 없거든요. 하지만 경기장만 찾지 못할 뿐, 여성들의 축구 사랑은 남자들과 똑같습니다.

페르세폴리스의 스타 선수인 에스틸리(Hamid Reza Estilli)가 개인 훈련을 하는 장소에는 차도르를 두른 소녀 축구팬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에스틸리를 사랑해 왔다는 소녀는 수줍은 표정으로 에스틸리에게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그런 짝사랑은 결국 본인 마음의 상처로만 남을 것이라는 친구들의 충고를 못 들은 척 하면서 말이죠.

이란 소녀들이 스타 선수를 추종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페르세폴리스의 수비수인 하셰미나삽(Seyyed Mehdi Hasheminasab)이 철천지원수인 에스테그랄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페르세폴리스의 팬진(fanzine)을 발행하는 사무실에는 수많은 항의 전화가 빗발칩니다. 소녀 축구팬들은 하셰미나삽과 직접 통화를 하면서 왜 하필이면 에스테그랄로 이적하는지 눈물 섞인 원망을 하죠.

알리 다에이와 이란-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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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축구, 이란식 스타일>의 한 장면.


클럽 축구의 열기와 함께 대표팀 스타인 알리 다에이(Ali Daei)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의 활약을 바탕으로 독일에 건너간 알리 다에이. 헤르타 베를린 팀에서 뛰는 그를 응원하기 위해 이란인 이민자들이 경기장을 찾습니다.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이란하면 카펫과 페르시안 고양이만 연상하는 현실에서 알리 다에이는 이란 사람들의 자부심이죠.

2011 아시안컵, 이란은 이라크와 맞붙습니다. 이란과 이라크는 1980년부터 8년간 국경과 종교 문제로 전쟁을 치른 바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당시 부상을 당해 장애를 갖게 된 병사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죠.

이란의 상이용사들은 이라크와의 축구 경기가 스포츠 이상이라며 승리를 기원합니다. 이란의 전통 찻집에서는 신에게 이란의 승리를 비는 제사가 열립니다. 마침내 경기는 시작됩니다. 평범한 이란 사람들도, 상이용사들도 한 마음으로 이란의 승리를 염원합니다. 그리고 이란은 이라크를 격파하죠.
축구 혁명은 과연 이란을 변화시킬 것인가?

테헤란 더비, 이란-이라크 경기의 뜨거운 열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에 근거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보수적인 이란 정부는 과도한 축구 열기를 경계하고 있다 하네요.

이 영화에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보여줍니다. 월드컵 1년 전인 1997년, 이란은 호주와 월드컵 진출권이 걸린 플레이오프를 치룹니다. 이 경기에서 이긴 팀이 월드컵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지요. 멜버른에서 열린 경기에서 이란은 마지막 15분 동안 두 골을 몰아치며 기적적으로 호주를 이기죠.

그 순간 수많은 이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파티를 즐깁니다. 마치 2002 월드컵 때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축구는 세계를 어떻게 지배했는가?』에는 당시 테헤란의 상황이 생생하게 나와 있습니다. 술에 취해 춤추고, 서구의 팝뮤직이 거리에 흘러나오며, 여성들이 머리 스카프인 히잡을 벗어던지기까지 했다네요. 이런 것들은 이란 정부가 추구하는 이슬람 국가의 모습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정부는 어떻게든 열기를 식히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란 대표팀 선수들이 귀국 행사가 열리던 경기장에는 여성의 입장이 금지되었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이란의 ‘축구 혁명(foot revolu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란의 축구 역사는 이란의 근대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란은 오늘날처럼 이슬람 율법이 엄격하게 지켜지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은 팔라비(Pahlavi) 왕조는 터키를 본 따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는 세속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정치, 경제, 사회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남성들은 이슬람 전통 복장이 아닌 양복 착용이 권장되었죠. 도로와 철도가 건설되고 서구 문화가 비교적 자유롭게 들어왔습니다. 축구도 그 중 하나였죠.

사실 이란에 처음 축구가 들어올 때만 해도 이란의 전통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축구가 서구의 가치를 무분별하게 들어온다며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서구화를 추구하던 팔라비 왕조는 축구의 보급을 장려했고, 이 시기에 테헤란 더비도 치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 팔라비 왕조는 축출되었습니다. 이후 서구화와 세속화를 추구하던 이란은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로 회귀했죠. 그동안 축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축구를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축구 열기는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았죠. 축구장의 응원 문화를 이슬람식으로 바꾸거나 유럽 축구 경기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방법은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결국 이란 사회는 축구 열기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축구는 이미 서구의 문화를 넘어서 이란에 토착화된 것입니다.

영화 <축구, 이란식 스타일>은 이런 이란의 축구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슬람 사회가 싫어하는 서구의 스포츠이지만 이란 스타일로 정착되어 버린 축구. 이미 히잡을 쓴 소녀들도,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평범한 이란인들도, 이라크와 성전을 펼친 상이군인들도 축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택시에서 만난 이란의 이슬람 지도자 이맘은 사람들이 축구에 너무 몰두하는 게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감독이 당신도 오늘밤 이란-이라크 경기를 볼 것 아니냐고 묻자 “봐야죠”라고 대답합니다. 과연 축구 혁명이 이란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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