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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후석 감독, 쿠바한인 다큐영화 ‘헤로니모’ 발표.. 한민족 정체성 넓히는 작업

  • 기사입력 2019-03-2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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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쿠바 한인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JERONIMO)-쿠바혁명에서 싸운 한인’을 제작하고 개봉을 앞둔 감독이 있다.

이런 의미있는 작업에 나선 사람은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인 전후석(35) 씨다. 전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전 감독은 전성현 국민대 경영정보학과 교수의 아들로, 아버지의 유학중 미국에서 태어나 3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라벌고를 다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시라큐즈 법대를 마치고 뉴욕 KOTRA 무역관에서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평소 정체성에 대해 고민도 하고 관심도 가지고 있던 전 감독은 우연히 쿠바 배낭여행길에 오르게 됐다. 그 곳에서 쿠바 한인의 정신적 지주인 고(故) ‘헤로니모 임’(Jeronimo Lim Kim 1926~2006, 한국명 임은조)의 딸 파트리시아 임(50)을 만나며 ‘헤로니모’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쿠바 배낭여행을 가서 한 한인 가정에 초청받아 감동을 받았다. 이방인에게 김치와 파전을 내놓는, 말도 안되는 대접을 받았고, 그 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제작은 마치 운명같은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감독은 2016년 3월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았다. 이후 쿠바에 4차례 방문하며 2년여에 걸쳐 93분짜리 다큐영화를 완성했다. 500명의 후원자에게 총 1억원, 모든 제작비는 후원으로만 모았다. 4개국 17개 도시를 돌며 헤로니모의 형제자매, 사촌, 친구, 재미교포 역사학자 등 총 70여명을 인터뷰했다.

“헤로니모 임은 한마디로 쿠바 한인의 정신적 지주, ‘쿠바의 안창호’라고 말할 수 있다. 부친(애국지사 임천택)은 애니캥 농장에 팔려온 반 강제 노예다. 헤로니모는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님 등 300명을 보면서 정의로운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공부도 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한다. 남미 최고 대학중 하나인 아바나 법대를 다녔는데, 동기 중 한 명이 쿠바혁명의 주역이자 49년간 쿠바를 통치한 피델 카스트로였다. 카스트로가 체 게바라와 함께 산으로 들어가 싸웠다면, 헤로니모는 무기와 자금을 조달하고 프로퍼갠더(선전가)로 혁명에 공을 세워 혁명정부 식량산업부 차관급까지 올랐다.”


전 감독은 이런 내용들이 영화에 포함돼 있지만, 헤로니모가 퇴임뒤 쿠바 한인사회 재건을 위해 헌신한 부분들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헤로니모는 공산주의 신봉자였다. 공산주의는 한인이 쿠바인과 동등해질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못살게 되면서 인본주의자로 바뀌었다. 그는 이데올로기 성향으로 움직인 사람이 아니라, 한인과 쿠바인들이 함께 잘살 수 있는 정책이 뭔가를 생각했다. 특히 1995년 쿠바 한인대표 자격으로 서울에서 열린 광복 50돌 한민족축전에 초청돼 고국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고 전환점으로 삼았다. 돌아가 11년간 쿠바 한인들의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해 한글학교를 건립하고, 아직 미완인 한인회 설립을 위해 헌신했다.”

전 감독이 영화 ‘헤로니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디아스포라라고 했다. 디아스포라(Diaspora)란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가리켰지만,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을 지칭하는 말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나는 전문 다큐멘터리언이 아니다. 하지만 헤로니모는 디아스포라 개념을 소개할만한 상징적 인물이다. 쿠바에는 이민 6세까지 1000명 정도의 한인이 살고 있는데, 4세 이후는 100% 혼혈이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이 사라진다.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하고, 본국과의 관계를 유지할까? 한인의 정의를 좀 더 넓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숫자를 더 넓히지 않고 줄이는 경향이 있다.”

전 감독은 “쿠바 여행도 나의 정체성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서 한인으로 살아가는 게 무엇일가? LA 폭동이 흑백갈등으로만 비쳐졌는데, 가장 큰 피해자가 한국교민이었다. 상점이 불타고 약탈 당해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 주류도 인종갈등으로 파악했다”면서 “한인들은 선출직 정치인도 거의 없고 오피니언 리더가 부족해, 돈만 벌려고 하는 부류의 이민자라는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전 감독은 공동체적 차별을 목격 하며 배워나갔다. 연변 과학기술대에서 반년 정도 일하며, 조선족 친구들의 비애와 재미동포의 그것이 유사함을 발견했다. 독일을 여행할 때에는 재독 교포, 광부와 간호사의 자식들이 한인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봤다.

“브라질에 있는 5만 교포들이 사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유태인만 디아스포라가 있는 게 아니고, 한인도 디아스포라가 있음을 알게됐다. 이스라엘 국내에서 일이 발생하면 전 세계 유태인이 여기에 주목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일도 한반도 내에서 뿐만 아니라 코리아 디아스포라가 영향을 미친다. 우리도 주인의식이 있다. 이는 본국을 향해 어떤 이득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아 존재 이유를 찾는 행위이자 작업이다.”

전 감독은 “고국과 디아스포라의 관계도 흥미롭다. 유태인은 나라를 잃고 3천년이나 타지에서 떠돌며 정체성을 유지했다. 한국은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다. 조선족, 탈북자, 재일동포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정서가 있다”면서 “한국인에 대한 정의를 축소해 스스로 파괴적이며, 배타적으로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에서 선진국으로 간 사람들은 한국을 배신했다고 보고,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 간 사람은 등한시한다”고 의미있는 말을 했다.

“재외동포가 8백만 시대다. 부산 대전 대구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다. 남한 인구의 16%가 한반도 밖에서 산다. 이런 나라는 흔치 않다. 우리가 우리를 포용하지 못하면 외국인을 포용할 수 없다. 한민족의 범위와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

전후석 감독이 2년전 변호사를 그만두고 디아스포라에 관련된 일에 계속 매달리겠다는 이유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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