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칼럼]대나무에 새겨받은 가르침

마음이 답답할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필자는 운 좋게도 이런 힐링 장소가 두 군데나 된다. 하나는 당일치기가 가능한 김대건 신부 생가에 조성된 충남 합덕의 솔뫼성지다. 다른 하나는 숙박을 하면서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곳으로, 전남 보성에 있는 서재필 선생 생가 바로 아래에 있는 ‘목임당’이라는 한옥스테이다.

‘김수자 발마사지’하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발 연구로 국내 1호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연고도 없는 보성까지 가서 한옥스테이를 운영하고 계신다. 가족 및 동료들과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번번이 머리와 가슴이 홀가분해져 돌아왔다. 단순히 경치만 좋아서가 아니라 좋은 분들의 말씀과 기운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보성의 아름다운 풍광, 고풍스러운 한옥에서의 하루, 교양 있고 친절한 주인장만으로도 고마운데, 여기에 화룡점정이 있다.

‘목임당’ 인근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31호인 김기찬 낙죽장(烙竹匠)이 사신다. ‘낙죽’이란 인두를 불에 달궈 대나무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작업이다. 인생의 무게와 연륜이 듬뿍 담긴 낙죽장 어르신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힐링의 완성이자 축복이 된다.

오래전부터 가슴에 새겨두고 틈틈이 꺼내 보는 가르침은 “큰 그릇은 기꺼이 가장 밑에 놓인다”다. 여러 개의 그릇을 안정적으로 놓기 위해서는 큰 그릇이 제일 밑에 놓여야 한다. 그릇이 큰 사람은 밑받침이 돼줘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제일 밑에 놓여 있지만 그 위에 많은 그릇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며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큰 그릇이다. 남들보다 높이 오르려고만 애쓰는 세간의 군상이 배워야 할 ‘배려와 헌신’이다.

이 말씀에서 필자는 “큰 그릇은 작은 그릇을 덮어줄 줄 알아야 한다”를 생각해봤다. 보이는 영역에서 큰 그릇은 아래에 놓이는 역할을 하지만 허물을 덮을 때는 자신을 뒤집어 아래의 작은 그릇들을 전부 감싸줘야 한다. 일이 생기면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은 빠져나가려는 고관대작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 우리 사회에 낙죽장의 가르침에 충실한 큰 그릇 같은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이번 보성 여행에서는 낙죽장으로부터 새로운 가르침을 하나 더 배웠다. 바로 “남을 도울 때는 거지에게 천 원 주듯이 하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거지에게 적선하면서 다시 그 돈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듯이 다른 이에게 무엇을 베풀 때는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말고 주는 것 자체에 만족하라는 의미다.

부족한 글솜씨지만 그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고 글을 써왔는데 이번 칼럼에서는 현자(賢者)의 가르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함이 몹시 아쉽다.

그런데 이런 좋은 가르침을 주시는 낙죽장께서도 요즘 고민이 있다고 한다. 바로 평생을 바쳐온 기능을 사심 없이 전수하고 싶은데 이를 위한 지원이 부족한 현실 때문이다.

남대문, 석굴암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이 문화재가 아니다. 인간문화재는 몸 자체가 국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기능이 제대로 보존되고 전수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을 대나무에 확실히 새겨서 전해주고 싶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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