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시 은평구의 한 기업형 슈퍼마켓 매대에서 핏물 제거용 수분 흡수 패드가 동봉된 닭고기가 판매되고 있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 일부 대형마트는 지난 10월 육류와 어류 포장에 흡수 패드를 사용하지 않거나 생분해성 소재로 교체하겠다고 밝혔지만,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인 SAP(고흡수성수지) 소재로 제작된 흡수 패드는 여전히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최준선 기자] |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크리스마스에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홈파티를 계획하고 있다면, 구입하려는 스테이크용 소고기 등이 미세 플라스틱을 한껏 머금고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온라인이나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고기에는 금방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핏물 제거용 수분 흡수 패드가 동봉되는데, 그 소재가 미세 플라스틱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에 묻어 나와 인체에 면역 반응이나 세포 독성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물론, 쓰레기를 적절히 처리하지 않을 경우 하천이나 바다를 오염시켜 다시 식탁 위로 올라올 수 있다.
지난 10월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중 3개 마트에서 각각 소고기 200g을 구입해 전문시험기관에 성분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소고기 세 제품에서 평균 1.6㎎의 미세 플라스틱이 나온 것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플라스틱(75μm 크기)이 7200여개 나왔고, 그보다 작은 30μm크기 미세플라스틱도 11만여개나 검출됐다.
포장육이나 어류의 포장 용기 안에는 고기 핏물을 흡수해주는 얇은 패드가 깔려 있다. 이 패드는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인 SAP(고흡수성수지, Super Absorbent Polymer)를 부직포로 감싼 것인데, 아이스팩이나 생리대, 기저귀 등에도 사용된다.
23일 서울시 은평구의 한 기업형 슈퍼마켓 매대에서 핏물 제거용 수분 흡수 패드가 동봉된 돼지고기가 판매되고 있다. [최준선 기자] |
소고기에서 검출된 미세 플라스틱은 SAP 중 일부가 부직포 바깥으로 빠져나와 묻어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정상적인 사용조건에서는 SAP가 용출될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안 의원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최근 3년간 흡수패드 명칭으로 수입·유통된 제품에 대한 용출 시험을 실시한 내역’을 요구하자 식약처는 국내산 제품과 수입산 제품 모두 ‘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식약처 답변은 흡수패드의 SAP 성분이 아닌 겉포장인 부직포에 해당되는 검사 결과이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흡착패드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답변”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FDA는 SAP를 식품 용기로 쓸 때 독성 물질 비중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무한 실정”이라고 했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지만, 호흡기나 혈관, 장기로 침투해 면역 반응이나 세포 손상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영국 헐 요크(Hull York) 의과대학 연구팀이 최근 국제 유해물질 저널(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에 게재한 논문을 참고할 만하다.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배양한 사람 세포에 미세플라스틱을 투여해 독성 영향을 살펴본 연구 결과들만 골라 살펴봤다. 분석 결과, 실제 사람들이 음식 등을 통해 섭취하는 수준의 미세 플라스틱만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포함한 면역 반응 ▷세포막에 미치는 영향 ▷세포막 통과 ▷세포 및 조직 손상 유발 등 범주에서 해로운 영향이 나타났다.
지난 2016년 그린피스의 선박 ‘벨루가 II호’가 독일에서 만타 트롤(해양 부유물 채취 장비)을 통해 확보한 샘플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다량 확인되고 있는 모습. [그린피스] |
물론 체내에 들어온 미세 플라스틱이 얼마나 오랫동안 체내에 남아있고, 또 어떻게 배출되는지는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불확실하다. 플라스틱 일부가 곧바로 체외로 배출될 경우 우려되는 수준의 독성을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수처리 시설 등에 걸러지지 않고 하천과 바다로 유입된 미세 플라스틱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초미세 플라스틱이 수유를 통해 새끼에게 전달돼 장기는 물론 뇌 조직에도 축적된다는 생쥐 연구 결과(한국생명공학연구원)는 유명하다.
풍화된 미세 플라스틱은 니켈, 납, 카드뮴같은 중금속을 옮기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플랑크톤이나 갑각류 등 소형 어류가 먹이로 오인해 미세 플라스틱과 중금속을 섭취하고, 이는 체내에 축적돼 먹이사슬 상위 단계인 어류와 해양 포유류로 전달된다. 인간 식탁에 올라오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된 성체 굴의 난모 세포수가 대폭 감소하고 정자 속도가 떨어지는 등 그 자체로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연구도 있다.
다행히 유통 업계는 핏물 제거용 수분 흡수 패드의 사용을 중단하고 나섰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이마트 등 대형마트는 최근부터 육류와 어류 포장에 흡수 패드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단순히 흡수 패드를 사용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고기 핏물은 미생물 성장을 촉진해 제품을 빨리 상하게 하기 때문에, 육류 유통에 수분을 흡수할 장치는 필수적이다. 여력이 되지 않는 중소규모 마트에선 여전히 흡수 패드가 사용되는 이유다.
이에 일부 기업은 식물 세포벽의 주성분인 셀룰로스를 이용해 대체 흡수 패드를 개발하고 있다. 인체에 무해하면서도 100% 생분해돼 미세 플라스틱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개발사 측의 설명이다.
영국 스완지대학교 연구원들이 개발한 육류 유통 용기. 핏물 흡수 패드 대신, 수분을 머금고 있는 홈을 용기 바닥에 마련했다. [클뢰크너 펜타플라스트] |
아예 흡수 패드가 필요 없는 포장재를 개발하려는 노력도 있다. 영국 스완지대학교 연구원들이 개발한 육류 유통 용기는 바닥에 작은 홈을 여러 개 마련해 핏물이 고일 수 있도록 디자인됐는데, 홈이 유체 물리학에 기반해 설계됐기 때문에 용기를 뒤집어도 핏물이 빠져나오지 않는다. 이미 영국 내 여러 식품 업체와 소매 업체들이 이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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