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투자한 국민연금 빈손
투자자활동·배당확대 절실
새로운 주총문화 계기될 수
15세기까지만 해도 동북아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유럽과 중동을 앞섰다. 16세기 들어 유럽 등 서양의 물리력이 동양을 추월하기 시작한다. 경제적으로는 르네상스 이후 펼쳐진 대항해시대, 군사적으로는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유럽 내전(內戰) 때문이다. 통일된 왕조를 이어간 중국, 외부 팽창을 포기한 한국, 전국시대를 통일한 에도 막부로 안정된 일본과 달리 유럽은 비슷한 힘을 가진 열강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갈등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은 발전과 진보를 낳는 강력한 에너지다.
금호석유에서 숙질간인 대주주들 사이에 또 이견이 발생했다. 경영권 보다는 주주환원 정책을 두고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일 전망이다. 당사자들에게는 스트레스일 지 몰라도 일반 주주에게는 꽤 반길 상황이다.
지난해 금호석유의 실적(연결기준)은 사실 경이로울 정도다. 전년대비 매출액은 75.9%, 늘어난 8조4618억원, 영업이익은 224.3% 급증한 2조4068억원이다. 하지만 주가는 1년 전에 비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현재 시가총액이 5조원 가량으로 전년 순이익 대비 주가수익비율(PER)로 따지면 고작 2.5배다. 화학업종 가운데 가장 낮은 밸류에이션이다. 현재 주가는 매출액 4조8095억원, 영업이익 7422억원이던 2020년말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말 순자산이 5조905억원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도 1배 미만이란 뜻이다. 지난해 초 경영권 분쟁 당시 한때 8조원을 넘기도 했지만 실적이 좋았던 지난해 내내 주가는 내리막만 걸었다. 1년 전 29%에 달했던 외국인 주주 비중은 20% 아래로 떨어졌고, 기관들도 지난 해 내내 보유 비중을 줄였다. 주가 관리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된다.
회사 측은 지난해 말 연결기준이 아닌 별도기준 순이익의 20~25%를 주주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별도기준은 연결기준 보다 순이익이 줄어든다. 전년 배당성향은 연결기준 19.9%지만, 별도기준으로는 26.6%다. 올해 오히려 배당성향이 더 낮아지는 셈이다. 아무튼 회사측 약속대로면 올해 배당은 주당 8800원 수준이다. 지난 연말 기준 주가로 5.3%의 시가배당률이다. 높아 보이지만 배당을 많이한다기 보다는 주가 저평가가 심각해서다. 금호석유가 롯데케미칼 정도인 PER 5배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받는다면 배당수익률은 4%대로 낮아진다. 4%대 배당을 하는 주식들은 수두룩하다. 고배당주로서의 매력을 호소하려면 회사 측이 제시한 수준 이상의 배당 성향이 필요해 보인다.
금호석유 주주구성을 보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박찬구 회장 등의 지분율이 15%에 불과하다. 주주제안을 내놓은 박철완 전 상무 측만 10%가 넘는다. 소액주주들이 결집하면 배당정책을 바꿀 정도의 힘은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해 박 회장 손을 들어줬던 국민연금의 결정이 중요해 보인다. 국민연금이 금호석유 지분 5% 이상 보유 신고를 한 때는 2012년 8월이다. 2012년 당시 주가가 현재와 비슷하다. 이후 10년간 2%포인트 가량 지분을 늘렸지만 평균 매입단가와 시간가치를 따지면 투자성적은 극히 저조하다고 봐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전자 주주총회 개최가 보편화되고 개인들도 증시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기업들에 주주환원은 더욱 중요해졌다. 예전처럼 소액주주 무시하면 혼쭐이 날 수도 있는 구조가 됐다. 올 주총에서 건전한 갈등이 더 많이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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