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지출 늘지만 보험료 정체
사상 첫 적립기금 축소 가능성
국내 주식 팔아 보유가치 하락
換 부담에도 해외 주식에 올인
국민연금 적립 기금이 사상 첫 역성장 위기에 몰렸다. 주식 비중을 잔뜩 늘려 놓았는데 증시 하락으로 투자 손실이 커졌다. 그럼에도 주식 비중을 더 높일 방침이다. 다른 나라보다 값이 더 떨어진 국내 주식을 더 사겠다는 것은 아니다. 원화가치 하락에도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해외 주식을 적극 살 계획을 세웠다. 물가 상승과 그에 따른 고금리가 각국 재정난은 물론 식량과 자원 대란으로 이어지며 ‘복합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증시가 빠른 시간 내 반등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해외주식 중심의 국민연금 운용 전략은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적립기금 첫 역성장 위기=4월말 현재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918조 6000억 원이다. 전년 말 보다 29조 5000억 원 줄었다. 4월 한 달 동안만 무려 9조 5000억 원이 감소했다. 올 들어 4월까지 운용수익률은 -3.31%다. 국내 주식은 -7.52%로 비교지수(코스피) 대비 0.46%포인트 나은 성과를 냈다. 해외 주식은 -6.03%로 비교지수(MSCI ACWI, 한국제외) 보다 1.16%포인트 낮다. 달러 기준으로는 -12.25%이지만 환 차익 덕분에 손실이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코스피는 5월 이후 13% 가량 추가 하락했다. 1~4월의 낙폭(11%) 보다 크다. 미국 증시도 두 자릿수 가까운 하락 폭을 보였다. 국민연금의 올해 수입계획은 73조 7130억 원으로 전년(94조 440억 원) 보다 작다. 연금보험료 수입이 처음으로 줄고 이자 및 재산수입이 반토막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5~6월 투자 손실은 더 커졌을 게 뻔하다. 올해가 연간으로 적립기금이 줄어드는 첫 해가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2008년과 2018년도 운용 손실을 봤지만 적립기금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연금보험료 흑자가 운용 부분 손실 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손실 규모가 더 커진 것은 주식 비중 때문이다. 2007년 11.6%였던 주식 비중이 지난 해 말 44%까지 높아지면서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의 절대 규모가 팽창했다.
▶“고갈을 늦춰라”…주식 비중 더 높이지만=저출산·고령화로 국민연금 고갈은 시간문제다. 이를 늦추려면 운용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실제 국민연금은 주식 비중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내년 국민연금 기금운용 목표 비중은 국내 주식 15.9%, 해외 주식 30.3%다. 각각 1조 400억 원, 33조 8320억 원을 더 살 예정이다. 내년도 여유자금 순증 금액 47조 원 가운데 72%가 해외주식이다. 2027년 목표 비중은 국내 주식 14%, 해외주식 40.3%다. 2027년이면 기금 적립 규모는 현재보다 30% 가량 많은 130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목표 비중을 맞춘다면 국내외 주식 투자액은 현재 400조 원에서 715조 원으로 79% 급증하게 된다. 이쯤 되면 거의 ‘올인’ 수준이다.
시장 충격으로 기금이 손상된다고 해도 연금보험료 등 신규 자금이 계속 유입되면 만회가 쉽다. 주가가 하락해 100조 원 주식 가치가 90조 원으로 줄어든다고 치자. 다시 100조 원이 되려면 주가가 11.1% 이상 올라야 한다. 새로 5조 원을 투자한다면 5.3%만 오르면 된다. 매수 단가 하향, 이른바 ‘물타기’ 효과다. 문제는 국민연금으로 신규 자금 유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자료를 보면 총 가입자는 2021년 말 2235만 명에서 2022년에는 2207만 명으로 감소하고, 2023년에는 2200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은퇴자 급증으로 급여 등 연금 지출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39년에는 국민연금 재정수지가 적자로 전환된다. ‘물타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나이들 수록 위험자산 줄여야 하는데=수익(return)은 위험(risk)과 비례한다. 나이가 들수록, 운용자산 규모가 커질 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는 게 정석이다. 수익이 잔뜩 쌓인 상황에서 위험자산 비중이 높으면 시장 충격에 따른 손실도 크기 때문이다. 최근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이 도입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목표설정형펀드(TDF)는 수익이 쌓일수록 위험 자산 비중을 낮추는 구조다.
퇴직연금은 각 개인별 자산이다. 수익과 손실이 모두 개인 단위로 한정된다. 이와 달리 공적연금은 집단으로 운용된다. 기금이 손실을 입어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면 나라 돈을 투입해 메워야 한다. 국민연금이 공격적으로 주식 비중을 높이는 게 옳은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달러가 초강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해외투자를 늘리면 향후 원화 강세 전환 시 환차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의 달러 가치는 글로벌 경제의 상당한 위험을 반영, 역사적 평균을 상회한다.
올 1분기 말 주요 공적연금의 주식 비중을 보면 미국 캘퍼스(CalPERS) 47%, 캐나다(CPPIB) 29%, 일본(GPIF) 50%다. 캘퍼스는 2025년까지 주식비중을 42%까지 줄일 계획이다. GPIF는 국내와 해외주식 비중을 거의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2027년 쯤이 되면 주요 공적연금 가운데 국민연금의 주식 비중, 특히 해외주식 비중이 가장 높을 수 있다.
▶계속 국내 주식 판다면…‘제 발등 찍기’=이제는 수익 보다는 위기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 됐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계속 줄여야 할까?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게 투자의 기본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은 2020~2021년 반등 장에서 코스피에서만 27조 원을 순매도했다. 지수가 오른 덕분에 보유자산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수익률도 시장을 이겼다. 잘 판 셈이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하락 장에서는 주식을 계속 내다 판다면 보유자산 가치는 더 떨어지게 된다. 공매도로 지수 하락을 주도한 외국인들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의 올 연말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16.3%다. 4월말 비중은 16.6%이지만 5~6월 코스피 하락 분을 반영하면 16.3%를 밑돌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지금은 국내 주식을 더 파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사서 시장을 지키는 게 나은 접근일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