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회의가 열리고 있다. NPT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의 핵 보유는 예외적으로 인정하면서 이들 간 핵군축을 추진하고 이들 외에 핵확산을 방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5년마다 재검토회의를 열어 회원국 간 비확산과 핵군축 과제 이행 현황을 평가한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7년 만에 열린 올해 NPT 회의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핵보유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황에 따른 핵무기 사용 여지를 내비쳤다. 중국은 현재 300기 수준의 핵무기를 2030년까지 1000기로 확장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이미 NPT 탈퇴를 선언한 북한은 핵무기 보유 수량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승절 연설 등을 통해 한국과 미국에 대한 선제 핵사용 위협을 시사했다.
1960년대 후반 NPT가 창설된 당시 기대와 달리 핵군축과 비확산 전망이 어느 때보다 어두워졌고 오히려 핵확산과 핵전쟁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공세적 핵개발을 추진하는 러시아, 중국, 북한은 모두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의 핵 취약성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우리 위정자들은 주변의 공세적 핵정책에 직면했을 때 비핵국가로서 한국이 어떤 대응책을 강구해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전례를 볼 때 다음의 네 가지 대응책이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재래식 전력 증강이다. 예컨대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킬체인(Kill chain), 대량응징보복(KMPR) 등 한국형 3축 체계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미 핵을 보유한 북한은 한국에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3축 체계 같은 재래식 전력 증강을 과소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핵보유 동맹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확장억제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이미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비핵동맹들에 대해 핵우산은 물론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공약을 거듭 밝히고 있다.
셋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공유 방식이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튀르키예 등은 1960년대부터 미 전술핵을 자국 내 배치하고 핵기획그룹을 통해 운용을 협의하는 핵공유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핵사용 최종 권한은 미국이 보유하지만 표적 선정과 같은 핵무기 운용 결정 과정에는 여타 비핵동맹들이 공동 관여하는 방식이다.
넷째, 스스로 핵무장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미국 핵보유에 대응해 1949년 핵개발에 성공한 냉전시대 구소련, 인도 핵개발에 대응해 1990년대 핵실험에 성공한 파키스탄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대릴 프레스와 제니퍼 린드 교수는 한국이 NPT 제10조에서 규정한 NPT 탈퇴 조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독자적 핵무장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다만 핵무장의 길 선택을 위해 한국 지도자는 NPT와 한미 원자력협정,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등 국제사회에 공약해온 비핵화 규범을 이탈하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책공약을 통해 3축 체계를 강화하고, 미국과 확장억제 제공 신뢰성을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핵위협, 중국 핵전력 증강 등 비상한 현실에서 보다 강력한 핵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예컨대 일본, 호주 등과 공동으로 가칭 인도·태평양 지역 확장억제연대를 구성해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인·태 지역 핵공유 체제 구축을 추진해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 호주가 체결한 오커스(AUKUS) 협정에 참가해 원자력잠수함 기술을 공여받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불안정성을 더해가는 한반도 핵질서에 대응해 보다 강력한 다자적 핵억제 정책을 구현하는 것이 오히려 핵시대의 평화정책으로서 불가피하다. 기존의 발상을 뛰어넘어 핵억제 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서둘러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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