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노트 수요예측 ‘대참패’
공모가 높을수록 수수료 늘어
기업가치 부풀리기 관행 만연
자본시장법 취지에도 어긋나
희망공모가 산정법 개선 필요
춘추시대 제 영공(齊 靈公)의 애첩이 남장을 즐겼다. 궁에서 즐기니 유행이 됐다. 남녀 구분이 어려워져 나라에서 금지했지만 유행은 가라앉지 않았다. 영공이 이유를 묻자 재상 안영(晏嬰)이 답한다.
“궁중 여인에게는 허용하면서 민간에만 금지하니 이야말로 ‘문밖에는 소머리를 걸어두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
영공이 이 말을 듣고 궁에서 여인의 남장을 금지하자 유행도 금세 사라졌다. 원전인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는 소와 말인데 송나라 때 양과 개로 바뀌면서 ‘양두구육(羊頭狗肉)’이 된다.
올 하반기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던 바이오노트가 수요예측에서 ‘대참패’했다. 참여자의 95% 이상이 하단(1만8000원) 미만을 제시했다. 공모가는 희망밴드 하단의 절반인 9000원으로 정해졌다. 증권업계에서 투자은행(IB) 부문의 명가로 꼽히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공동 주관사다. 실력이 없을 만한 회사들이 아니다. 그런데 희망공모가 산정 과정을 보면 어이가 없다.
동종 유사 기업을 선별해 가치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바이오 부문과 동물 부문을 나눠 다른 밸류에이션을 시도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기준이 되는 이익에서 치명적 오류를 방치했다.
바이오노트 매출과 이익 대부분이 바이오 부문, 즉 코로나19 진단키트 관련이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바이오 순이익은 4470억원이다. 4분기에도 3분기까지와 비슷하다는 전제로 기업가치 추정 때 기준이 되는 올해 연간 순이익을 5960억원으로 예상했다. 바이오 부문만 5736억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비교 기업 PER값을 곱하니 바이오 부문 기업가치만 무려 3조원으로 평가됐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바이오노트 매출은 동물이 320억원, 바이오가 80억원이다. 동물 부문은 이번 공모희망가 산정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5878억원으로 추정됐다. ‘위드 코로나’가 대세다. 내년부터 코로나 진단키트 수요는 급감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바이오노트에서 진단키트 재료를 납품받는 에스디바이오센서의 내년 실적 증권사 추정 컨센서스를 보면 올해 대비 매출은 절반 이상 줄고, 순이익은 3분의 1 토막이 난다.
바이오노트 측도 받아들인 확정 공모가는 주당 9000원이다. 이 값이면 기업가치는 1조원가량이다. 역산하면 바이오 부문 가치는 주관사들이 평가액의 13%인 4000억원 정도가 적당했다는 뜻이 된다. 주식은 미래가치의 현재 할인이다. 이는 증권사들의 에스디바이오센서 실적 추정치와도 일치한다.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이 같은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증권업계의 공모가 부풀리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장하는 입장에서는 공모가를 높일수록 유리하다. 구주 매출로 대주주나 재무적 투자자(FI)들의 보유 지분이 현금화될 때는 더욱 그렇다. 바이오노트도 FI가 보유한 구주 일부가 이번에 매각된다. 주관사들은 공모가가 높을수록 수수료 수익이 커진다. 반대로 투자자들에게는 불리하다.
금융회사들은 늘 ‘고객’을 위하겠다고 강조한다. 영리기업이니, 고객의 정의는 ‘돈벌이 되는 손님’인 것이 맞다. 하지만 투자상품을 중개하면서 자신과 고객을 이익을 위해 시장참여자를 ‘기망’하려 한다면 금융업을 영위할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기망행위로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가 사기죄다. 자본시장법 제37조는 신의성실 의무 등을 정한다. 금융투자업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금융투자업을 영위해야 한다. 금융투자업자는 금융투자업을 영위함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투자자의 이익을 해하면서 자기가 이익을 얻거나 제삼자가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아니 된다.
동법 178조는 부정거래행위 등을 금지한다.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란 사회통념상 부정하다고 인정되는 일체의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말한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도8109, 판결)
수요예측이란 전문투자자의 검증 과정을 거치는 만큼 ‘기교’가 사용된 희망공모가를 제시한 것만으로 자본시장법 178조1항 위반이라 보기는 어렵다. 동법 37조 위반 소지는 크지만 이 조항은 위반해도 처벌할 수 없다. 범법은 아니지만 분명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시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
금융의 근간은 신뢰다. 제 배 불리자고 대중을 기망하려는 금융회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한때 뜨거웠던 공모시장에서 수익을 낸 이들은 상장 직후 차익을 실현한 이들이다. 단타 투자만 부추기는 현재의 공모가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증권사 대부분이 주가 예측 기능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공모희망가액을 산출할 때도 미래 현금 흐름의 현재가치 할인모형(DCF) 방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돼 평가지표로서의 유의성을 상실할 수 있다며 잘 사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로 상대가치 평가법이 사용된다. 하지만 비교 기업 선정이나 평가지표의 적용방법에서 자의적 선택이 이뤄진다. 이럴 바에야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나마 주관사의 주가 예측 능력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절대가치법을 사용하는 것만 못하다.
공모 가격 산정 방식에 관한 공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 기업 공시 서식에서 상대가치 평가를 위해 채택된 비교 기업의 절대가치도 함께 제시하거나 비교 기업 선정과 평가지표 적용방법의 객관적 근거를 상세하게 제시하는 방식의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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