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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쭈글쭈글한 이 주머니 뭐지?” 다 쓴 로션 열어보니 [지구, 뭐래?]
스타트업 ‘이너보틀’에서 출시한 로션. 종이로 된 병 내부의 실리콘 주머니에 로션이 들어있다. 주소현 기자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사용 중 펌프를 열지 마세요. 제품 특성 상 내용물이 뿜을 수 있습니다”

함부로 열지 말라는 경고 문구에 종이 재질의 병까지. 친환경 포장을 표방하는 로션의 내부는 어떨지 궁금증을 안고 끝까지 사용해봤습니다.

펌프를 돌려 열고, 마개를 한번 더 열자 쭈글쭈글한 실리콘 재질의 주머니가 딸려 나왔습니다. 로션은 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터라 종이로 된 병의 내부는 로션 등 이물이 전혀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뚜껑과 펌프에 묻은 로션만 조금 닦아내면 재활용으로 내놓기에 손색 없는 깨끗한(?) 쓰레기였습니다. 실리콘 주머니와 마개도 분리되는 데다 펌프에 용수철이 들어있지 않아서 뚜껑은 플라스틱으로,로션이 묻지 않은 종이병은 종이류로 각각 버렸습니다. 로션이 담겨 있던 실리콘 주머니는 일반쓰레기입니다.

분리 배출에 최적화된 이 로션, 용기 안의 용기라는 이중 포장 기법을 개발한 스타트업 ‘이너보틀’에서 출시한 제품입니다.

[이너보틀 홈페이지 캡처]

화장품을 비롯해 각종 세면용품 등이 바닥을 비울 때마다 버리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남아있는 내용물을 싹싹 긁어 쓰기 위해 거꾸로 뒤집어 놓는 건 기본, 튜브는 가운데를 잘라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물로 여러 번 헹궈내도 거품이나 내용물이 미끌미끌하게 남아있는 용기를 일반쓰레기와 플라스틱 수거함 중 어디로 버려야 할지 난감합니다.

화장품 용기는 대표적인 일회용품 중 하나가 됐습니다. 디자인 상 복잡한 구조로 돼 있거나 재활용 하기 어려운 여러 소재가 섞여 제작되는 탓입니다. 또 용기에 남아 있는 내용물이 재활용할 수 있는 다른 용기까지 오염 시킬 수도 있습니다.

튜브 내부에 남은 로션을 쓰기 위해 잘라낸 모습. 주소현 기자

화장품도 포장재 재질에 따른 분리배출 표시 의무 대상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재활용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써야 됩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3월 국내 상위 15개 화장품 유통·판매업체의 294개 제품의 재활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62.6%는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았습니다. ‘보통’이 22.1%, ‘우수’는 14.6%, ‘최우수’는 0.7%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처럼 재활용 하기 어려운 화장품들을 두고 소비자들은 각자도생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내용물만 구입하는 리필스테이션인데, 점포가 많지 않은 데다 지정된 용기를 별도 구입해야 하고 세척이 어렵지 않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아예 포장재를 버리지 않으려 비누처럼 고체로 된 샴푸나 바디워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전히 액체로 된 화장품이 대세인 터라 버리기 쉽고 환경에도 좋은 용기를 원하는 수요가 많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설문에 참여한 소비자 700명 중 87.3%는 ‘동일한 조건이라면 친환경 용기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 쓴 바디워시 병. 표면에는 떼기 힘든 스티커가 있고, 펌프 안에는 금속 용수철이 들어 있다. 주소현 기자

이런 가운데 용기 속에 용기를 넣은 이너보틀의 포장법은 눈 여겨볼 만 합니다. 우선 사용할수록 실리콘으로 된 주머니가 쪼그라들어 화장품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화장품 용기에는 내용물이 많으면 25%까지 남는데 이너보틀의 용기는 남는 내용물이 약 0.3%라고 합니다.

또 화장품이 묻는 단면을 최소화해서 재활용 또는 재사용할 수 있는 포장재의 비중을 키웠습니다. 병과 마개 등을 분리하기 쉽고, 소재가 종이나 플라스틱 등으로 단순하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깨끗한 병을 버리기 아깝다면 이너보틀에 회수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훼손이나 오염도가 크지 않은 병은 그대로 재사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재사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같은 재질끼리 녹여서 새로운 용기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재사용이나 재활용을 전제로 용기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화장품 용기를 버리는 것뿐 아니라 생산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들어가고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는 “화장품 용기는 깨끗해야 재활용할 수 있어서, 시중에 나온 친환경 용기 중 재활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바깥 용기를 재사용 또는 재활용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너보틀식 포장법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었습니다. 플라스틱이면 플라스틱, 종이면 종이, 병이면 병 등 단일 소재를 사용했다는 이유입니다. 또 용기 재사용이나 리필의 한계점인 오염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재질이 단일화되더라도 오염된 용기는 재활용하기 어려운데 이중 포장을 하면 내부 용기만 버리면 된다”며 “위생이 걸림돌이었던 리필에도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설명했습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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