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순 총감독·송칠석 코치' 단독 인터뷰
박채순 올림픽 양궁대표팀 총감독(광주시청 감독·왼쪽)과 안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칠석 코치 제공] |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 기자] # 대한민국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마지막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든다. 마지막 한 발, 보는 이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TV 화면에 눈을 떼지 못했고 손과 발은 땀으로 흥건하다. 정작 주인공만 태연하다. 스무 살 양궁 국가대표 안산의 이야기다.
찬란한 금빛 슈팅. 코로나19와 더위에 지친 5000만 국민은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신궁 탄생에 환호했다. 화려한 조명 뒤엔 올림픽 선수들을 키워낸 스승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었다.
“막바지 훈련을 신안 자은도에서 했습니다. 올림픽 경기장과 바람 방향·지형 등 모든 조건이 비슷한 이곳에서 최종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실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4일 광주에서 만난 한국양궁대표팀 박채순 총감독과 송칠석 코치는 9연패 달성 등 올림픽 드라마 연출 배경을 ‘초격차’에서 찾았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수 선발은 기본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한국대표에 선발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이름값이 있는 선수라도 선발전과 평가전에서 실력을 못 내면 그대로 탈락이다. 멘털과 충분한 연습량, 데이터 관리, 열정이 없으면 언제든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게 대한민국 양궁의 경쟁력이다.
현대차그룹 총수 정의선(오른쪽) 양궁협회장은 만사를 제쳐두고 현장에서 선수단을 응원했다. 정 협회장과 송칠석 코치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칠석 코치 제공] |
담력을 키우기 위해 유격훈련을 받고 야구장 한복판에서 활시위를 당긴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현재 대한민국 양궁대표팀의 경쟁 상대는 대한민국 양궁대표팀이다.
2위 그룹과 경쟁 자체가 안 되는 비교 우위 전략을 쓰고 있다. 대표팀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박빙 승부를 펼친 이유를 무관중 경기에서 찾는다. 경쟁국 선수 대다수는 관중이 많으면 실수를 많이 하는데 외적 환경이 조용하다 보니 상대 선수가 선방했다는 점이다.
‘양궁은 과학이다.’
정의선 양궁협회장이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현대차그룹 총수가 만사를 제치고 현장을 지키면서 선수단은 든든한 언덕을 얻게 됐다.
협회는 1억5000만원을 들여 충북 진천선수촌에 도쿄 유메노시마양궁장을 본뜬 세트장을 마련했다. 모든 조건이 현지와 똑같다. 대형 LED 화면에 입장부터 슈팅, 마무리까지 모든 컨디션을 실제 올림픽에 맞췄다. 심지어 안내멘트도 일본어와 영어로 소개했다. 도쿄 홈구장과 다를 바 없다.
현대차도 기술 지원에 힘을 보탰다. 현대차는 양궁에 필요한 연구·개발(R&D)과 성능 향상에 선수 못지않게 땀을 쏟았다. 고정밀 슈팅머신, 점수 자동기록장치, 심박 수 탐지 기능 3D 프린트를 이용한 선수 맞춤형 그립 딥, 러닝 버전 인공지능 코치 등은 대한민국 양궁의 질적 향상을 이끌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기 위해 한국 선수 체형에 맞는 경쟁력 있는 국산 활 개발에도 집중했다. 결국 국산 활 품질은 글로벌 톱 수준으로 도약했다. 실제 안산과 김제덕 선수의 장비도 국내산이다.
박 총감독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과학기술 DNA를 양궁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베이스(DB)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전략과 전술을 섬세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면서 “2016년 리우올림픽 전 종목 석권,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 4개의 성과도 이 같은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9연패 신화’를 쏜 한국양궁팀. 선수와 함께 굵은 땀방울을 쏟은 지도자들의 헌신이 주목받고 있다. 박채순(왼쪽) 총감독과 송칠석 코치가 광주국제양궁경기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서인주 기자 |
송칠석 코치는 올림픽 뒷이야기를 전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선수단식당 대신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라면과 도시락 등 대충 끼니를 챙겼는데 정 협회장이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특식을 공수하기 시작했다. 그때 저녁에 먹은 장어덮밥은 환상의 맛이었다고 한다. 기력을 보충한 선수들은 연이어 금맥캐기에 성공했다.
대표팀 코치진은 화려하다. 박채순 총감독(광주시청 감독)을 비롯해 홍승진(청주시청 감독) 남자대표팀 감독, 정재헌(대구 중구청 감독) 남자대표팀 코치, 류수정(계명대 감독) 여자대표팀 감독, 송칠석(광주체고 감독) 여자대표팀 코치 등 어벤저스급이다.
총감독을 맡은 박 감독은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2003년부터 광주시청 감독을 맡아 기보배, 최미선, 이특영, 최민선, 김소연 등 우수 선수를 키워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대표팀 코치,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대표팀 감독을 하며 양궁 전관왕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남자부 감독에는 임동현, 김우진 등 정상급 선수를 배출한 홍승진 청주시청 감독이, 여자부 감독으로는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여자부를 이끈 류수정 감독이 재선임됐다.
남자부 코치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개인전 은메달리스트인 정재헌 대구중구청 감독이, 여자부 코치는 떠오르는 신예 안산(광주여대)을 국가대표로 키워낸 송칠석 광주체고 감독이 맡았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안산 선수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연합] |
송 코치는 국민스타로 떠오른 안산 선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송 코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양궁을 시작한 안산은 나이는 어리지만 멘털과 자신감, 차분한 경기 운영 능력이 탁월하다” 며 “앞으로 대한민국 양궁을 빛낼 유망주로 더 많은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광아 광주시양궁협회장을 비롯해 광주여대, 양궁협회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보태주셔서 오늘의 성과가 이어졌다” 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올림픽의 감동과 가치를 지키는 한편 후진 양성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안산은 4일 재학 중인 광주여대에서 열리는 환영 행사에 참석해 올림픽 3관왕 소감 등을 밝혔다.